읽을거리 플랫랜드 이야기 : 이(異)차원을 상상하기 2009/11/05 09:53 by toonism

플랫랜드 - 6점
에드윈 애벗 지음, 윤태일 옮김/늘봄

이게 신판이구요,



플랫랜드 이야기 - 6점
에드윈 애벗 지음, 윤태일 옮김/늘봄

이게 구판입니다.


책 뒤표지 소개글 (일부발췌)

이 소설은 미치광이 정사각형이 자신이 경험한 여러 차원의 세계에 대해 회상하는 형식으로서, 『걸리버 여행기』의 계보를 잇는 환상 여행기의 고전이다. 『걸리버 여행기』가 주로 어린이용 동화로 읽히고 있는 데 반해, 이 소설은 하버드대 예일대 등 미국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신입생이들이 꼭 읽어야 할 필독이 교양서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혹 이(異)차원을 상상해본 적이 있으신지?

어릴 적, 4차원을 상상해본 적은 물론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주위에도 4차원을 상상하는 아이들은 많이 있었지요. 그런데 혹시 지금의 3차원보다 높은 차원이 아닌 낮은 차원을 생각해본 적은 있으신지요? 종이에 무언가를 쓰거나 그려 놓고는, 그들이 인간(혹은 비슷한 어떤 존재)라면 어떨지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지요?

어릴 때의 취미가 독서라는 말은 종종 왕따 혹은 은둔자 혹은 몽상가라는 뜻으로 귀결되기도 합니다.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앞에 '종종'이라고 했듯이.) 나는 그 중 하나에 속했습니다. 몽상을 많이 하곤 했지요. 주위에서는 공상과학만화(당시엔 SF라는 이질적인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어요)를 보면서 4차원/5차원만을 알고 있었지만 난 2차원과 1차원을 떠올리곤 했답니다. 그 어릴 때 어찌 차원을 알았느냐 하면, 사실은 나름대로 조금 머리가 굵었다는 중학생 때였다는 말을 추가로 해야겠군요. 완전 어릴 때는 아니었던 거지요.

각설하고, 2차원이나 1차원의 세상을 상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 책은 바로 2차원의 세상에 살고 있는 한 존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플랫랜드[FLATLAND]에 살던 서술자(정사각형)의 이야기이죠.


책의 절반은 플랫랜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플랫랜드는 어떻게 생겼는지, 플랫랜드의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그들은 어떻게 생활하며 어떤 고민을 하며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이(異)차원의 독자에게 소개합니다. 최고위 성직자인 원부터 정다각형ㅡ이등변삼각형ㅡ직선에 이르기까지의 계급 분화라든지, 도대체 2차원에서 이런 외형의 차이만으로 어떻게 사람을 구분하는가라든지(그들의 세상에서는 모든게 점 또는 직선으로 보일 텐데!) 등을 흥미롭게, 그리고 그럴 듯하게 설명하지요.

나머지 절반은 그의 이(異)차원 여행입니다. 2차원[플랫랜드]의 존재인 그가 우연히 알게 된 라인랜드[LINELAND]라든지, 고차원에서 온 스승을 통해 알게 된 스페이스랜드[SPACELAND] 혹은 그보다 높은 차원이라든지, 모든 것이 점 하나이고 점 하나가 모든 것인 포인트랜드[POINTLAND]라든지, 이런 곳을 돌아다니는 내용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돌아다니지는 않습니다만.)



기하학적인 흥미를 유발하는 것 말고도, 이 책은 당시의 시대상을 풍자함으로써 책을 다 읽고 나서 뭔가 생각할 수 있는 꺼리를 많이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대부분의 생각할 꺼리는 책 뒤의 옮긴이의 말에 다 들어 있더군요. 기적의책刊 『화성의 공주』를 읽은 어떤 분의 포스팅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 뒤에 해설이 너무 상세하게 잘 되어 있어서 내가 생각할 여지가 없잖아! (링크를 첨부하고 싶지만 도대체 언제 어디서 읽은 포스트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의미만 대충 전달되게 적었습니다.)

생각할 여지가 사라지고 나니 독서가로서의 입장에서 출판사 운영하는 사람으로서의 입장으로 전환됩니다. ('출판사 대표로서의'라고 적으려 했는데 왠지 낯이 뜨거워집니다.)


......한참 쓰고 여기저기 트랙백을 날리려다 보니, 이 소설에 대한 포스팅과는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가 되어 있군요. 한 개의 포스팅에 두 개의 주제를 쓰는 건 독자를 혼동시키는 나쁜 짓이자 기껏 생긴 포스팅거리를 날리는 바보 같은 짓이므로, 자연스럽게 이 글은 두 개의 포스팅으로 나뉩니다. '출판사 운영하는 사람으로서의 입장으로 전환'된 다음 포스팅은 이것입니다 : 책 포장하기, 나는 상업출판을 하는 사람이다



이건 번역자가 다른 판본인데, 위의 구판과 신판 사이에 나온 놈이군요.




2009/11/05 신판이 새로 나온 기념으로 옛날 포스팅 재활용. ^^
(원래는 2008/08/25 23:01 에 올렸던 글입니다. 당시에는 절판도서였죠. ^^)

읽을거리 절망의 구 :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가 2009/10/16 15:47 by toonism

절망의 구 - 10점
김이환 지음/예담


1억 원짜리 공모전 수상작.



작가 김이환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물론 나도 어찌어찌 장르문학 쪽에 살짝이나마 몸을 담고 있다 보니 그의 이름과 작품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들어 왔지요. 올 여름에 무크지 《미래경》의 기획ㆍ편집을 하면서 진아 님이 보내 주신 원고를 통해 조금 더 알게 되기는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그의 작품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더군요.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미래경》 기사를 볼 땐 분명 그의 글을 읽고 싶어 했는데, 며칠이 지나고 나니 그런 욕망이 사라져 있는 겁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서, 다니는 많은 블로그 글에서, 그의 작품에 대한 칭찬은 계속 들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러다가 이번에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직접 뵌 적은 한 번도 없음에도 왠지 아는 사람이 수상한 것처럼 기쁘더군요. 이제는 그의 책을 읽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억이라는 말에 혹한 걸 보니 나도 참 속물은 속물인가 봅니다.


알라딘 소개글의 '줄거리'는 가급적 읽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책 내용의 80%를 친절하게 요약해 놓았더군요. 구입할 때 미처 읽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 아래부터 나오는 내용은 책 내용의 90%입니다. 알아서 판단하시길.)


'남자'는 담배를 사기 위해 저녁에 잠시 외출을 했다가 어떤 노인으로부터 "…을 조심하게, 젊은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무엇을 조심하라는 것일까 생각하던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새까만 공에 한 사내가 흡수당하는 장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칩니다.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던 '남자'는 다음날 뉴스를 보고 크게 놀랍니다. 자신의 동네에서 보았던 '검은 구'가 서울을 휩쓸고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흡수하고 있었던 거죠. 부모의 안위가 걱정된 그는 급히 ○○○ 시로 출발하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을 떠나고 있습니다. '남자'는 결국 차를 버리고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정체불명의 '검은 구'에 대한 새로운 사실과 헛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은 불안을 분노로 표출하려 하고, 군대는 모종의 이유 때문에 ○○○ 시의 모든 사람을 소개한 후 그 안에 사람을 들이지 않으려 합니다.


스포일러 주의! (클릭)
'남자'는 일반적인 헐리웃 영화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인류의 종말을 막기 위해 신이 배정한 최후의 용사도 아닙니다. 그는 그저 도망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처음 '남자'의 동네에서 검은 구를 발견했을 때 그는 동네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리기보다는 자신이 도망가는 쪽을 택합니다. 사람들이 검은 구에 대한 잘못된 지식으로 위험에 노출될 상황에서도 그는 오해받는 것이 두려워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알리지 않습니다. 한 종교집단으로부터 숙소와 음식 등 많은 도움을 받지만, 이들이 위험에 빠지자 그는 도움의 손길을 뿌리치고 도망치기에 급급합니다.

위기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인간의 이기심과 흉폭성은 지나가던 범죄자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공인 '남자' 또한 작품 후반부에서는 동거인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고, 말미에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남자'를 제외한 모든 이가 구에 흡수되고 한참이 흐른 어느날 갑자기 구가 사라집니다. 그와 함께 흡수되었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오지요. 세상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최소한 겉보기에는 돌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검은 구가 무엇인가를 추적하던 사람들은, 남자가 최후의 생존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들이 느꼈던 공포를, 절망을 남자는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욕합니다. 그렇게까지 자신이 걱정했던 부모마저도 남자에게 등을 돌립니다. 남자가 두려워해야 하는 존재는 이제 검은 구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입니다.
누르면 닫혀요



이 소설은 '멀티문학상'이라는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멀티문학상'은 출판사와 영화사, 방송사가 모여서 만든 상입니다. 컨텐츠 하나 발굴해서 책으로도 내고 영화로도 만들고 드라마로도 만들겠다는 뜻으로 만든 상인 거죠.

허나 이 이야기의 결말 부분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기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듯합니다. 오죽하면 엔딩 공모전을 새로 열었겠어요. (우수작 선정 축하드립니다, 날개 님 ^^)


난 이 결말이 좋았고, 영화나 드라마가 나온대도 (장르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 결말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왠지 영상매체에서는 장르가 액션으로 바뀔 것 같군요.

읽을거리 별의 계승자 :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의 경이감 2009/10/15 16:10 by toonism

별의 계승자 - 8점
제임스 P. 호건 지음, 이동진 옮김/오멜라스(웅진)


21세기 초에, 지구의 위성인 달에서, 5만 년 전의, 우주복을 입은 인간이, 발견된다.


세상에, 이게 말이 돼?

라고 생각했습니다.


세부 장르는 하드 SF랍니다. 『중력의 임무』를 채 50페이지도 읽지 못하고 던져 버린 이력이 있는 터라 두려움이 앞섭니다. 생물학, 지질학, 수학, 언어학 등 수많은 학문들이 치고받는답니다. 오오, 이거 문과생은 읽으면 안 되는 건가? (그나마 언어학... 아냐, 언 어차피 경상계열과는 무관하잖아!)

『중력의 임무』는 재미 있다는 소문을 듣고 구입한 게 아니라 희귀한 책 모으는 몹쓸 병때문이었으니, 그 책이 내게 맞지 않는 건 어쩌면 예정된 것이었을지도 모르지요. 그래서인지 『별의 계승자』가 나오고 두어 달이 지나도록 구매하지 못했고, 그냥 주위 사람들의 말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 같이 재밌다는 겁니다. 사람들 블로그를 돌다가 <스포일러>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를 보고 <뒤로 가기> 버튼 누르기를 십수 차례, 이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9월 초에 구하고야 말았지요. 그나마도 김이환 신작 『절망의 구』를 구매하면서 같이 구매한 겁니다. 읽고는 싶은데 한편으로는 두려웠어요. 또 50페이지 읽고 집어 던질까 봐.

걷는 시간 빼고 버스 타는 시간만 해서 출퇴근 각각 10분밖에 되지 않는 짧은 틈을 이용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규격화된 시간 내에 책을 읽다 보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당혹스럽게도, 이렇게 많은 고민을 한 게 어이없게도, 『별의 계승자』는 미친 듯이 재밌었습니다. 이 책에서 제일 안 넘어가는 부분은 앞부분 30페이지 가량이에요. 여기만 넘어가면 그 다음부터는 이해가 될 듯 말 듯한 미친 학문 롤러코스터를 탈 수가 있습니다. 수많은 학문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데 어떻게 즐기냐구요? 그건 예전에 썼던 『쿼런틴』 감상글을 쵸큼 인용해 보겠습니다.

저는 과학 이론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더군다나 양자역학이라면 당연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했다는 건지는 아직도 이해가 안 갑니다.) 그러다 보니, 양자역학을 기초로 한 이 소설 『쿼런틴』을 보면 정신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용 자체를 이해를 못한다는 건 아닙니다. 무예를 할 줄 모르면서 무협지를 보거나 마법을 쓸 줄 모르면서 D&D류 환타지를 본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겠지만...(후략)

소설에서 묘사만 제대로 해 준다면, 무예를 할 줄 몰라도 항룡십팔장이니 타구봉법이니 하는 게 현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는 대충 알 수 있고, 마법을 쓸 줄 몰라도 라이트닝 볼트니 매직 애로우니 하는 게 어떤 역할을 할지는 대충 알 수 있습니다. 그건 SF에서도, 특히 하드 SF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 안에서 묘사만 제대로 되어 있다면, 생물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이놈이 이러이러해서 일반적인 척추동물이래요'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고, 지질학에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여기는 이러이러해서 옛날에 뭔 일이 발생한 땅이래요'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거예요. 중요한 건 잘 모르는 무언가에 대한 묘사를 보고 얼마나 상상해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인가, 라는 거죠. SF가 과학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어려운 게 아니라, 독자가 아직 상상할 준비를 하지 않아서 어려운 겁니다. (헉, -거예요, -거죠, -겁니다 의 연속이다;;;)

정작 책 내용에 대한 감상글은 안 쓰고 이런 식으로 하드 SF 변호를 하는 이유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해서 설명하려다 보니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스포일러라고 생각해야 할지 애매해서입니다.


5만 년 전의 인간이 우주복을 입은 상태로 달에서 발견된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수십 수백의 (혹은 전지구의) 학자들이 다양한 학설을 제시하며 설명해 보려 합니다. 이 월인(月人)이 인간은 맞는지, 인간이라면 지금의 인간과는 얼마나 유사한지, 밥은 먹고 다녔는지. 지구에서 온 놈인지(그렇다면 왜 지구에 문명의 흔적이 없는지), 다른 곳에서 온 놈인지(그렇다면 어떻게도 이렇게까지 지금의 인간과 유사할 수 있는지).

수많은 학설이 생겨나고, 그많큼 많은 학설이 폐기됩니다. 그럴싸한 학설이 생겨나면, 그에 반하는 새로운 증거가 발견됩니다.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주위 환경의 변화에서 경이감을 느끼는 게 일반적인 SF라면, 이 이야기에서는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들과 최종적으로 밝혀지는 그 진실 자체에서 경이감을 느끼게 됩니다.

5만 년 전에 달에 묻힌 시체 한 구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태양계의 밝혀지지 않았던 커다란 비밀이 드러나면서 막을 내립니다. 책 말미의 에필로그는 괜히 힘을 빼는 것 같고 불필요해 보이긴 합니다만, 전반적으로 흠을 잡기가 어려운 훌륭한 소설입니다.

게다가 과학적 논쟁을 하는 내용이, 나온 지 30년이 지났는데도 촌스럽지 않다는 건 정말 기적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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