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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6월의 일기

...절망적이다. 어딘가에서 '씨줄날줄이 견고하게 짜인, 간만에 보는 괜찮은 스릴러물' 이라는 말을 들었기에 본 영화였다. 같이 갔던 사람이 『그림 형제』나 『해리 포터』를 보자고 했을 때 그걸 보는 거였는데, 괜히 국산 영화를 보고 싶어져서, 자막 읽기가 귀찮아서 이 영화를 선택했다. 물론 이 영화를 선택한 배경에는 앞의 두 영화만큼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지만.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는데, '견고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잘 모르는 듯하다. 이럴 땐 '성기다'라고 하라구.

때려 죽인다고 해도, 견고하다고는 못하겠다. 어디선가 미스터리물이라는 이야기도 하던데, 미스터리는 없다. (사실 스릴러라고 하기도 어렵다. 스릴이 느껴져야 스릴러라고 할 거 아냐.) 범인이 누구인지는 영화 절반쯤 지나면 나온다. 워낙 뻔한 사람이라 처음에 등장했을 땐 '저 사람은 너무 뻔하니까 범인이 아닐 거야, 엄청난 반전이 숨어 있겠지' 라고 생각했을 정도.


얼마나 어설픈지 하나 하나 따져 보자. 워낙 많아 다 말할 순 없으니 몇 개만 맛보기로.

1. 영화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신은경의 배때기 상처. 과거에 뭔가 사고가 있었다는 것을 살짝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 후 한참을 아무 설명이 없다가 조카가 한 번 뭐라고 하고, 배에 칼침 맞는 장면 살짝 나오는데, 영화 내용과는 거의 무관할 뿐만 아니라 아무 감흥도 느낄 수 없는 에피소드. 설마 저런 장면으로 뭔가 느끼게 하려는 의도였을까?

2. 캡슐의 비밀. 저 캡슐은 어떤 성분으로 만들었길래 위에서 녹지 않는 걸까? 아니, 그것보다, 분명히 살인 장면을 보면 갑자기 뛰어들어 찔러죽이는데, 도대체 그 캡슐은 언제 어떤 방법으로 먹인 걸까?

3. 해부할 때, 저렇게 아무나 배를 째도 되나? 잘은 모르지만, 형사가 저렇게 몰래 시체에 칼을 대는 건 절대 불가능할 듯. 그 직전에 언뜻 나온 한 아줌마가 '이거 나도 목 걸고 하는 거야'라는 멘트가 나오긴 하는데, 그럼 그 아줌마가 직접 째지? 일개 형사의 추측 하나만 가지고 시체를 제공해줄 만큼 그 아줌마가 친한 관계라는 설명도 없다. 차라리 종종 나오던 검시관으로 하지. 게다가 캡슐은 위 속에 들어 있는데, 배를 째면 어떻게 캡슐이 나오지? 배를 째고 위도 째야 캡슐을 빼내는 거 아닌가? 시체가 오래 되어서 내장이 다 부패한 거야? 그런 건 아닐 텐데.

4. 그런데 그 범인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여럿 죽이는 동안 안 들키지? 그렇게 허술하게 죽이는데 말야. 엘리베이터에서 죽일 땐 감시카메라가 찍고 있더만. 마침 관리인이 다른 데 보고 있었으니 안 들켰지, 그 때 관리인이 화면을 보고 있었으면 엘리베이터 멈추고 경찰에 신고했을 거 아냐.

5. 범인이 세례받았던 성당으로 형사를 데려가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형사로 하여금 잠시나마 범인의 정체를 모르게 하려다 보니 세례명을 사용한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성당까지 데려갈 건 없잖아. 교인으로서 살인을 저지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양심과 싸운다든지 그런 장면은 전혀 없고. 차라리 그런 장면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걸.


이런 어설픔 하나 하나만큼이나 짜증나는 건,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그것이다. 머리가 나빠서 평소에는 영화를 봐도 그 영화가 뭘 보여주려 하는지 잘 못 느끼는데, 이 영화는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줘서 그게 뭔지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가 말하는 건 다름아닌 청소년들의 무시무시한 왕따 행위와 그걸 막지 않고 방관하는 자들에 대한 경종이다. 그걸 보여주려고,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도 10분 가까이 왕따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런데 진짜로 왕따 문제가 저 수준인가? 학생들 앞에서 자위를 시키거나, 돌아가면서 때리거나, 걸레 빤 물을 먹이거나, 그렇게 한 학년 전체가 한 명을 왕따시키기도 하는 건가? 아니, 이건 내가 잘 몰라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왕따라는 단어가 생길 때쯤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니까.

문제는 내가 왕따 동영상을 보면서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야 할 텐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 제작자에게 화가 났다. 이건 단순히 자극적인 장면일 뿐, 왕따라는 게 왜 문제이고 어찌 해결해야 하는가를 위한 장면이 아니었다. 왕따 가해자들이 뒤늦게 후회하거나 겁에 질리는 장면은 채 1분도 되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이 영화는 왕따를 근절하자는 말을 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왕따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단지 분노하게 해주는 소재일 뿐이지.


덧1. 김윤진도 그렇고, 신은경도 그렇고, 영화 참 못 고른다.
덧2. 극장에서 볼 수 있는 팜플렛에 나온 내용 50%는 뻥이다. 믿지 마라.



감독 : 임경수
배우 : 신은경, 김윤진, 문정혁, 윤주상, 맹세창
장르 : 드라마, 스릴러
등급 : 15세 이상
상영시간 : 105분
제작년도 : 2005년
개봉일 : 2005년 12월 01일
국가 : 한국

by toonism | 2005/12/09 15:10 | 볼거리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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