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티지 : 환상 같은 트릭, 트릭 같은 환상 읽을거리

프레스티지 - 6점
크리스토퍼 프리스트 지음, 안종설 옮김/북앳북스

나름대로 별점에 후한 나에게, 별이 세 개라는 건 '별로'라는 의미와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어볼 만하다. 이 책을 읽어야 동명의 영화를 더 즐겁게 볼 수 있고, 그래야 최고의 준비를 마친 상태로 영화 『일루셔니스트』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대 최고의 두 마술사 알프레드 보든(영화에서는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했다)과 루퍼트 앤지어(휴 잭맨이 연기했다)의 찌질한 투닥임 이야기. ('찌질한 투닥임'이라는 표현은 잠보니 님의 블로그에 댓글을 다신 Honey 님의 댓글에서 인용.)

소설이 좀더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에 주력했다면, 영화는 스릴과 미스터리에 더 주력한 듯. 소설에는 중간중간에 복잡하고 지루하고 집중력 떨어질 만한 부분들이 꽤 있는데, 영화에서는 이런 부분들을 과감히 삭제하거나 축약함으로서 긴장감을 유지시켰다.


두 마술사의 트릭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이 점 때문에 소설과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이야기가 크게 달라진다.

보든의 소설상 트릭은 '나'라는 표현 하나로 내 머리를 엄청 복잡하게 만들었고(종반부를 읽을 때쯤 알고 나서 책 전체를 다시 훑어보게 만들었다), 영화상 트릭은 소설에서의 '나' 장치는 없었지만 훨씬 직관적으로 트릭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보든의 트릭에 대한 묘사는 둘 다 훌륭하다.

앤지어의 트릭은 소설과 영화에서 각각 전혀 다르게 묘사된다. 어찌 보면 이 점 때문에 이야기의 마지막에 느끼는 감흥이 크게 달라질 텐데, 소설상 트릭이 소설의 기괴함을 증폭시켰다면 영화상 트릭은 이야기의 소품으로만 머물렀던 듯하다.

소설 전체에 깔린 보든의 (이야기 구성에 의한) 트릭, 앤지어의 은은하면서 기괴한 (그리고 절망적인) 트릭이 양 축을 담당한 소설에 비해 영화에서는 두 마술사의 대결이 중심 축으로 놓여 있고 각각의 트릭은 반전에 의한 긴장을 담당하는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소설이 구성 면에서 좀더 낫지만 영화 쪽이 더 대중적이고 접근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소설을 본 후에 영화를 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소설을 보는 건 왠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영화 『일루셔니스트』를 연관지은 이유는 환상 같은 트릭이냐, 트릭 같은 환상이냐의 차이를 생각하면서 보라는 것. 굳이 이렇게 보지 않아도, 영화 전체가 마술 트릭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그냥 그 속에 푹 빠지면 된다. 에드워드 노튼 멋있다.



프레스티지
휴 잭맨,크리스찬 베일,마이클 케인 / 크리스토퍼 놀란

일루셔니스트
에드워드 노튼,제시카 비엘,폴 지아매티 / 닐 버거



덧. 본문 어딘가에 끼워넣기 어려워 따로 쓴다 - 앤지어의 소설상 트릭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면, 그래서 그 가족 납골당의 모습이 영화에서 묘사될 수 있었다면 얼마나 근사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덧 둘, 이 소설은 스팀펑크류 SF 소설(혹은 독자에 따라서는 환상문학?)이다. 그러나 소설의 3/4 정도까지는 그런 것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이 소설 최고의 반전은 갑자기 스팀펑크로 변한다는 점일지도. (물론 작가의 성향에 대해 미리 알고 있던 분들은 그런 '반전'을 느끼지 않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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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잠본이 2008/01/09 21:17 # 답글

    트릭 자체는 분명 SF인데 마지막의 그 '납골당 부분'에서만은 갈데없는 영국식 고딕호러의 향기를 느꼈던 것입니다 (어쩌라고)
  • toonism 2008/01/10 15:42 # 답글

    잠본이 님/
    두 후손들의 이야기를 할 때에도 영국식 고딕 호러 분위기를 깔고 싶었지만 실패한 듯한 느낌... (작가의 의도를 맘대로 상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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