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쿄겐지 이야기 - ![]() 아기타다시 지음/서울문화사 |
지난번 포스팅에 말씀드렸듯이, 렛츠리뷰를 통해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겐지라는 별명을 가진 여자아이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죽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릴 때 친구와 부모가 살해당한 것을 시작으로 자신의 주위에는 죽음이 따라다닌다고 생각하는 겐지, 그리고 그의 주위에서 발생하는 몇 개의 '죽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첫 에피소드인 「나비의 장송」에서, 겐지는 친구 아게하의 남자친구로부터 아게하가 죽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아게하의 주검 앞에서 그녀가 느끼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이 소설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고정하는 에피소드라고 볼 수 있겠네요.
두 번째 에피소드인 「사신의 키스」에서 겐지의 친구 한 명이 또 죽습니다. 렌이라는 이 친구는 겐지를 끌고 '기요틴'이라는 밴드의 공연을 보러 가는데, 보컬인 토우야의 목소리를 들은 겐지는 저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토우야의 초대로 렌과 함께 '기요틴'을 방문했던 겐지는 먼저 자리를 뜨지만, 잠시 후에 렌이 죽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토우야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그럴 수야 없지요. 토우야는 앞으로 이 단편집에서 탐정 역할을 해야 하거든요.
세 번째 에피소드 「장미의 낙인」에서는 친구의 언니가 연쇄살인범이라고 하네요. 네 번째 에피소드 「냉혈의 론도」에서는 우산 끝을 갈아 사람을 죽이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가 나오구요.
마지막 「만화경의 개미」 에피소드에서는 잊고 있던 기억을 우연히 되찾게 된 겐지가, 그 기억을 확인하기 위해 고향을 방문합니다. 에필로그에는 자그마한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띠지에 적혀 있는 자신만만한 문구, 신감각 사이코 미스터리 소설. 일단 이 문구를 기준으로 정리해 보지요.
신감각.
흔히 쓰이는 표현입니다. 이 문구에 대해서는 따로 할 말이 없군요.
사이코.
이 문구 때문에 저는 작가의 전작 『사이코 닥터』나 『사이코 닥터 카이 쿄오스케』 등을 떠올렸습니다. 뭔가 정신병리학적인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주인공 겐지는 뭔가 죽음의 기미를 느낄 때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이제 사람이 죽을 거야, 어쩌고 저쩌고 하는 소리. 그 죽음이 자살이든 타살이든, 죽음에 대해서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의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겐지.
또한, 겐지는 어릴 적의 기억이 마치 가공이라도 된 듯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어릴 때 죽은 친구와의 추억들은 너무나도 또렷한데, 부모의 얼굴은 전혀 떠오르지가 않아요. 죽은 친구의 주검을 자신이 보았다는 것을 또렷하게 기억하지만 그 정황은 어딘가 불완전합니다.
미스터리.
이 '미스터리'라는 문구는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아니, 단정짓기는 조금 그렇고...) 조금 문제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미스터리 소설이라 하면 흔히 추리소설을 말하는데, 추리를 할 만한 여지가 도무지 보이지 않는 거죠. 미스터리 소설 한 편 보려고 이 책을 선택한다면 후회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비의 장송」에서의 트릭은 현대의 수사 방식으로 해결 못하는 게 바보일 테고, 「장미의 낙인」「냉혈의 론도」에서의 트릭은 상황 트릭이 아닌 얄팍한 서술 트릭이죠. (얄팍하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독자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전혀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비의 장송」「만화경의 개미」에는 트릭이랄 만한 게 없구요.
미스터리 성향을 띄고 있긴 하지만 단지 '차용'일 뿐이다, 라는 거죠. 그럼 도대체 이 소설의 정체는 뭐냐 하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직접 읽어보시는 수밖에.
소설.
위의 네 문구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을 굳이 소설로 쓸 필요가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문장 자체만으로도 독자를 충분히 만족시켜줄 만큼 뛰어난 문장은 일단 아닙니다.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이야기들을 보다 보면 만화의 장면 장면이 눈앞에 떠오릅니다. 본업이 만화 이야기작가라는 걸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더군요.
만화 이야기작가가 소설을 쓰면 그 결과가 심히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건 윤인완의 『아일랜드』로 이미 배웠지만, 이 책이 나왔을 때 내가 기대해마지않았던 이유는 바로 (다른 필명으로 나왔지만) 『소설 명탐정 김전일』 시리즈 때문이었습니다. 이 시리즈는 만화 이야기작가의 작품이라는 느낌이 굉장히 적었습니다. 오히려 '이건 도저히 만화화하기 어렵겠는걸' 하는 느낌을 받을 정도의 작품들도 있었어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입니다. 스타일리시한 글을 쓰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그 결과물은 밀도가 낮은 (그래서 남는 것이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렛츠리뷰를 통해 받은 첫 책이었고 좋은 평을 써 보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좋은 평이 나오지는 않네요.









덧글
이겨울 2008/09/27 00:15 # 답글
저랑 같은 느낌을 받으셨네요.굳이 이게 소설로 나올 책인가 싶더라고요. 계속 에지나 김전일 식의 연출이 눈앞에 왔다가 하는게 차라리 3-4권짜리 중단편 만화책 프로젝트로 나오는 게 훨씬 나았을 것 같기도 하고..좋은 평을 써주고 싶었지만 정말 힘들었다는 것도요...-_-;;
toonism 2008/09/29 16:56 #
방문 감사드립니다.정말 만화책용 스토리보드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쓰신 글을 보니 그런 내용을 심도깊게^^ 적으셨더군요. 동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