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 로스트 콘택트 : 킬링타임용 소설이란... 2008/12/16 23:28 by toonism

로스트 콘택트 - 4점
박치형 지음/로크미디어



렛츠리뷰를 통해 읽게 되었습니다.

도서밸리를 통해 들어오시는 분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계실 작품, 『로스트 콘택트』입니다.

렛츠리뷰 당첨 소식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 책이 소위 분서 사건의 대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분서 관련 글을 읽고 나면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아 자세히 읽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책을 읽기 전에 그 기대치가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지요.


이 소설은 테크노스릴러 혹은 밀리터리 소설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 구분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도 보긴 했습니다만.) 해당 장르의 특징이라면 아무래도 사실적인 (혹은 최소한 '독자가 느끼기에 사실 같은') 정보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진행을 들 수 있겠습니다. 그런 점에서라면 이 책은 낙제점입니다. 로스트 콘텍트 분서인증 : 기본적 성의의 부재라는 포스트에서 Luthien 님이 말씀하신 대로 '정보' 면에서 어설프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겁니다. 한편으로는 수중음향학을 전공했다는 작가의 이력이 소설 속에 제대로 녹아 들어가지 못했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으로 지적할 만합니다.

'클리셰의 향연'이라는 평이 나올 정도로 뻔한 이야기 전개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한국의 잠수함 몇 척이 공격당하고, 유능한 잠수함장들이 피습당하고 나니 남은 잠수함은 딱 두 대, 한 대는 (아직 짬밥 덜 찬) 전도유망한 젊은 군인이 지휘하게 되고 나머지 한 대는 주인공이 탄 잠수함을 살리고 자폭. 적인 일본 자위대(의 반란군이라고 주장하는 무리)는 능력도 안 되면서 잘난 체하는 놈과 능력 좋고 자존심 세고 머리는 조금 나쁜 놈, 능력도 좋고 머리도 좋은 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작전 진행. 이쯤 되면 소설을 읽으면서 '인물/사건에 의한 갈등의 고조' 같은 건 포기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분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기대치를 한껏 낮춘 후에 이 소설을 읽어보면 또 다른 모습이 보입니다.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 건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외출할 때였습니다. 목적지까지 대략 이십여 분간 책을 읽었습니다. 그날 어찌어찌하다보니 밤을 새워야 했고, 중간에 한 시간 가량 책을 읽었죠. 그리고 아침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십여 분간 책을 읽었습니다.

세상 모든 이야기가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을 때 시간을 보내기에는 킬링타임용 소설이 제격이고,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그 목적을 이루는 데 안성맞춤입니다. 재밌다고 꼽을 만한 부분은 따로 없지만, 속도감 있게 이야기가 진행되다 보니 지루함을 느낄 틈은 없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하거나 미리 계산했던 시간이 되어 있을 겁니다.


...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라 쉽게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불쌍하고 가난한 출판사가 낸 『화성의 공주』보다 천 이백 원이나 비싼) 이 책을 사서 읽었더라면 크게 실망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일단 난 렛츠리뷰에 당첨되어 책을 받았고, 그 덕에 '할 일 없이 멍하니 있어야 했을' 한 시간 사십 분을 나름대로 재미있는 공상을 하며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한 시간 사십 분짜리 킬링타임용 소설에 만 원을 투자하고 싶지 않다면 읽지 마시길.




덧.

다 쓰고 나서 갑자기 든 생각이라, 어느 부분에 끼워넣을까 고민하다가 그냥 제일 아래에 적습니다.

'이 책이 과연 분서라는 치욕을 당할 만큼의 책일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이 책보다 못한 책이 셀 수 없이 많은데 그 책들은 어쩌누'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이 책이 테크노스릴러 혹은 밀리터리 소설이라는 장르가 아니었다면, 혹은 이 책이 노블레스클럽에서 나온 책이 아니었다면 과연 이렇게까지 혹독한 대접을 받았을까요. 누군가에게/무언가에 대해 지적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그에게/그것에 대해 기대하기 때문일 겁니다. 분서라는 화려한 이벤트와 함께 데뷔한 작가가, 좌절하지 않고 절치부심해서 더 좋은 작품을 내놓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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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Frey 2008/12/17 00:13 # 답글

    분서 이야기는 고증 문제에서 나온 거였죠. 책 내용이나 이야기의 전개 부분에 대한 지적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 toonism 2008/12/19 07:55 #

    어떤 의미에서 말씀하신 건지 (그러니까 제 글 어느 부분에 대한 지적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 분서하신 분의 글을 보면 고증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도 지적이 있습니다. 다만 고증 부분이 워낙 많다 보니 잘 보이지 않는 거죠.
  • Frey 2008/12/20 00:24 #

    사실 투니즘님의 글에 대해서 한 말은 아니죠 (...) 하하;;;
  • toonism 2008/12/22 07:47 #

    아아, 제가 잘못 이해한 거군요. 제 글의 뭔가를 지적하신 건가 했습니다.
  • 2008/12/17 21:10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
  • toonism 2008/12/19 07:57 #

    감사드립니다. 전혀 늦지 않아요. 요즘 거의 손을 놓고 있는 터라...

    인질 역할이라니 후덜덜이군요. 봉건사회에선 흔했던 일이라니...

    주석을 어떻게 달아야 할지, 아니 달지 말지를 좀더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어쩌면 당연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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