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 절망의 구 :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가 2009/10/16 15:47 by toonism

절망의 구 - 10점
김이환 지음/예담


1억 원짜리 공모전 수상작.



작가 김이환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습니다. 물론 나도 어찌어찌 장르문학 쪽에 살짝이나마 몸을 담고 있다 보니 그의 이름과 작품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들어 왔지요. 올 여름에 무크지 《미래경》의 기획ㆍ편집을 하면서 진아 님이 보내 주신 원고를 통해 조금 더 알게 되기는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쩐지 그의 작품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더군요.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미래경》 기사를 볼 땐 분명 그의 글을 읽고 싶어 했는데, 며칠이 지나고 나니 그런 욕망이 사라져 있는 겁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서, 다니는 많은 블로그 글에서, 그의 작품에 대한 칭찬은 계속 들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러다가 이번에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직접 뵌 적은 한 번도 없음에도 왠지 아는 사람이 수상한 것처럼 기쁘더군요. 이제는 그의 책을 읽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억이라는 말에 혹한 걸 보니 나도 참 속물은 속물인가 봅니다.


알라딘 소개글의 '줄거리'는 가급적 읽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책 내용의 80%를 친절하게 요약해 놓았더군요. 구입할 때 미처 읽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하지만 이 아래부터 나오는 내용은 책 내용의 90%입니다. 알아서 판단하시길.)


'남자'는 담배를 사기 위해 저녁에 잠시 외출을 했다가 어떤 노인으로부터 "…을 조심하게, 젊은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무엇을 조심하라는 것일까 생각하던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새까만 공에 한 사내가 흡수당하는 장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칩니다. 정신없이 도망치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던 '남자'는 다음날 뉴스를 보고 크게 놀랍니다. 자신의 동네에서 보았던 '검은 구'가 서울을 휩쓸고 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흡수하고 있었던 거죠. 부모의 안위가 걱정된 그는 급히 ○○○ 시로 출발하지만,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을 떠나고 있습니다. '남자'는 결국 차를 버리고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정체불명의 '검은 구'에 대한 새로운 사실과 헛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은 불안을 분노로 표출하려 하고, 군대는 모종의 이유 때문에 ○○○ 시의 모든 사람을 소개한 후 그 안에 사람을 들이지 않으려 합니다.


스포일러 주의! (클릭)
'남자'는 일반적인 헐리웃 영화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인류의 종말을 막기 위해 신이 배정한 최후의 용사도 아닙니다. 그는 그저 도망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처음 '남자'의 동네에서 검은 구를 발견했을 때 그는 동네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리기보다는 자신이 도망가는 쪽을 택합니다. 사람들이 검은 구에 대한 잘못된 지식으로 위험에 노출될 상황에서도 그는 오해받는 것이 두려워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알리지 않습니다. 한 종교집단으로부터 숙소와 음식 등 많은 도움을 받지만, 이들이 위험에 빠지자 그는 도움의 손길을 뿌리치고 도망치기에 급급합니다.

위기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인간의 이기심과 흉폭성은 지나가던 범죄자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인공인 '남자' 또한 작품 후반부에서는 동거인에게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고, 말미에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합니다.


'남자'를 제외한 모든 이가 구에 흡수되고 한참이 흐른 어느날 갑자기 구가 사라집니다. 그와 함께 흡수되었던 사람들이 모두 돌아오지요. 세상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최소한 겉보기에는 돌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검은 구가 무엇인가를 추적하던 사람들은, 남자가 최후의 생존자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신들이 느꼈던 공포를, 절망을 남자는 느끼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욕합니다. 그렇게까지 자신이 걱정했던 부모마저도 남자에게 등을 돌립니다. 남자가 두려워해야 하는 존재는 이제 검은 구가 아닌 수많은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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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멀티문학상'이라는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멀티문학상'은 출판사와 영화사, 방송사가 모여서 만든 상입니다. 컨텐츠 하나 발굴해서 책으로도 내고 영화로도 만들고 드라마로도 만들겠다는 뜻으로 만든 상인 거죠.

허나 이 이야기의 결말 부분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기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은 듯합니다. 오죽하면 엔딩 공모전을 새로 열었겠어요. (우수작 선정 축하드립니다, 날개 님 ^^)


난 이 결말이 좋았고, 영화나 드라마가 나온대도 (장르가 바뀌지 않는다면) 이 결말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왠지 영상매체에서는 장르가 액션으로 바뀔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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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망의 구 2009/10/21 20:12 #

    -저자: 김이환 -출판사: (주)위즈덤하우스 누구도 그것들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완벽한 구(球)의 형상을 띤 그 물체들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원리로 서서히 이동하면서 매끈한 표면에 접촉한 생명체를 남김없이 흡수했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서 우왕좌왕하던 사람들도 곧 패닉에 빠져 도망치기 시작한다. 도시의 기능이 마비되고 언론도 제 구실을 못하게 되자 출처가 의심스런 소문만 횡행한다. 혼란한 틈을 타서 타인을 해치고 이익을...... more

덧글

  • DOSKHARAAS 2009/10/16 15:51 # 답글

    츠츠이 야스타카 같군요 소개글만 보면 :-)
  • toonism 2009/10/16 16:14 #

    무슨 말씀이신지, 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읽어 보니, 그도 그렇군요. 다만 이야기가 주고자 하는 방향은 완전히 다르니... 꼭 한 번 읽어 보시길.
  • DOSKHARAAS 2009/10/16 15:51 # 답글

    반지 속으로 구매 예정중입니다 ;-)
  • toonism 2009/10/16 16:15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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