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을 읽다.저 위
김용을 읽다.의 90%는 사실 이 『녹정기』의 감상을 적기 위해 말문을 연 글이다. 글을 적다가 보니 김용을 읽게 된 경위를 밝히는 게 우선일 듯하여 저 글을 쓰게 되었지만, 그래도 원 의도를 따라 글을 다시 옮긴다. 엄밀히 말하자면
김용을 읽다.에 들어간 글이 인용글이고, 그 원문이 이거다. 뭔가 대단한 글의 일부였나 생각하면 지는 거다;; 『녹정기』에 대한 감상글은 짧다.
고등학교 때 한참 무협지에 빠져들 때쯤, 김용 매니아 하나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녹정기』야말로 최고의 무협지야." 당시 김용의 『사조삼부곡』(물론 당시에는 이런 제목을 몰랐고 단지 『영웅문』 3부작으로만 알고 있었다)을 읽은 후 한국 무협에 빠졌던 나는,
"김용의 작품 중에 『영웅문』 시리즈가 최고라고 들었는데, 그게 아냐? 그럼 그건 어떤 내용인데?" 라고 물었고, 그 친구는 내게 『녹정기』가 왜 최고인지 설명해 줬다. 주인공은 무공이 매우 낮지만 무공이 높은 수하들이 한가득, 여자는 또 어찌나 많이 따르는지, 어린 나이에 특출난 재능도 없이 황제의 총애를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반군의 수장에,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그래서 어쩌라고? 재미 있을 만한 구석이 전혀 없는데? 무공이 낮은 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 따위, 재미있을 리 없어!"
어느 분의 블로그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석원군 님의 블로그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링크를 걸기 위해 찾아가 보니 그런 글이 없다) 2000년대 초반에 한참 많이 나왔던 대본소용 판타지 소설들이 『녹정기』의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따른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주인공은 십대 초반의 소년이고, 특출난 재능 없는 것 같은데 화려한
구라언변으로 주위 모두를
속이고감화시키고 만나는 여자마다 주인공과 연결되고 (그 과정에서 첫눈에 반하는 사람도 있고 싫다 싫다 하다가 결국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아무튼 대본소용 판타지 소설과 구조적으로 매우 흡사하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대다수의 대본소용 판타지 소설은 고등학생(혹은 일부 중학생과 대학생)들이 글을 쓴 경우가 많았고, 이들 작품은 작가의 판타지(소설 장르로서의 판타지 말고;)가 그대로 투영된 작품들이라는 해석. 그럴싸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글을 읽다 보니, 내가 아직까지 『녹정기』를 읽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내게 싸구려 한국 무협이나 본다고 잘난척 거들먹거리던 그 김용 매니아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읽었을 텐데.
위의 블로그 글에 탄력받아 뒤늦게나마 『녹정기』를 찾아보게 되었다. 주위에서 책을 구할 수가 없었다(헌책방에서 발견한 책은 대부분 이가 빠져 있거나 백년 묵은 고서처럼 닳아 있었다). 그래서 20대 초반 한참 왕성하게(그리고 무개념으로) 웹서핑하던 때에 다운받았던 텍스트파일을 찾아보게 되었다.
읽는 내내 한 가지 생각밖에 안 들었다.
"이건 나의 욘사마(庸さま)가 아냐!" 이런 주인공에 이런 전개라니. 그러나 난 아직까지 김용 작품이라고는 『사조삼부곡』, 『천룡팔부』, 『소오강호』 정도밖에 읽어보지 못했다. 그나마 『사조삼부곡』은 두 번 세 번 읽었다지만 『천룡팔부』와 『소오강호』는 어떻게 읽었는지 어떤 내용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다들 최고의 작품이라는데, 나도 그런 기쁨 느껴보고 싶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단편을 포함해 기껏 열다섯 편이라고 하니 전부 다 읽어보는 수밖에. 전부 다 읽어보면 뭔가 답이 나올 거야. 내가 이제까지 읽은 작품은 기껏 다섯 편뿐이잖아.
그리하여 2007년 하반기는 김용의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개인적으로 내 글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라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이전 글과 다른지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을..(턱이 없잖아! 게다가 그런 분들이 있을 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