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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신조협려

김용을 읽다.

고등학교 때 한참 무협지에 빠져들 때쯤, 김용 매니아 하나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녹정기』야말로 최고의 무협지야." 당시 김용의 『사조삼부곡』(물론 당시에는 이런 제목을 몰랐고 단지 『영웅문』 3부작으로만 알고 있었다)을 읽은 후 한국 무협에 빠졌던 나는, "김용의 작품 중에 『영웅문』 시리즈가 최고라고 들었는데, 그게 아냐? 그럼 그건 어떤 내용인데?" 라고 물었고, 그 친구는 내게 『녹정기』가 왜 최고인지 설명해 줬다. 주인공은 무공이 매우 낮지만 무공이 높은 수하들이 한가득, 여자는 또 어찌나 많이 따르는지, 어린 나이에 특출난 재능도 없이 황제의 총애를 받으면서 한편으로는 반군의 수장에,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그래서 어쩌라고? 재미 있을 만한 구석이 전혀 없는데? 무공이 낮은 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 따위, 재미있을 리 없어!"

어느 분의 블로그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석원군 님의 블로그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링크를 걸기 위해 찾아가 보니 그런 글이 없다) 2000년대 초반에 한참 많이 나왔던 대본소용 판타지 소설들이 『녹정기』의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따른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주인공은 십대 초반의 소년이고, 특출난 재능 없는 것 같은데 화려한 구라언변으로 주위 모두를 속이고감화시키고 만나는 여자마다 주인공과 연결되고 (그 과정에서 첫눈에 반하는 사람도 있고 싫다 싫다 하다가 결국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아무튼 대본소용 판타지 소설과 구조적으로 매우 흡사하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대다수의 대본소용 판타지 소설은 고등학생(혹은 일부 중학생과 대학생)들이 글을 쓴 경우가 많았고, 이들 작품은 작가의 판타지(소설 장르로서의 판타지 말고;)가 그대로 투영된 작품들이라는 해석. 그럴싸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글을 읽다 보니, 내가 아직까지 『녹정기』를 읽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내게 싸구려 한국 무협이나 본다고 잘난척 거들먹거리던 그 김용 매니아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읽었을 텐데.


이 이야기는 김용 매니아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김용 작품을 『사조삼부곡』, 『천룡팔부』, 『소오강호』 정도밖에 읽어보지 못한 내 입장에서는, "이건 나의 욘사마(庸さま)가 아냐!" 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이게 김용의 최고, 최후의 작품이라는 거지? 고민에 고민, 고민.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단편을 포함해 기껏 열다섯 편이라고 하니 전부 다 읽어보는 수밖에. 전부 다 읽어보면 뭔가 답이 나올 거야. 내가 이제까지 읽은 작품은 기껏 다섯 편뿐이잖아.

그리하여 2007년 하반기는 김용의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는 시간이 되어버렸다.


읽은 순서는 다음과 같다 :

2007.07 - 00.鹿鼎記(녹정기)
2007.07 - 01.越女劍(월녀검)
2007.08 - 02.天龍八部(천룡팔부)
2007.08 - 03.射雕英雄傳(사조영웅전)
2007.08 - 04.神雕俠侶(신조협려)
2007.08 - 05.倚天屠龍記(의천도룡기)
2007.08 - 06.白馬嘯西風(백마소서풍)
2007.08 - 07.俠客行(협객행)
2007.08 - 08.笑傲江湖(소오강호)
2007.09 - 09.碧血劍(벽혈검)
2007.10 - 10.書劍恩仇錄(서검은구록)
2007.10 - 11.飛狐外傳(비호외전)
2007.10 - 12.雪山飛狐(설산비호)
2007.10 - 13.鴛鴦刀(원앙도)
2007.10 - 14.連城訣(연성결)

연대 순으로 읽었으며, 『녹정기』는 『벽혈검』과 『서검은구록』 사이에 있어야 마땅하지만 이미 읽었으므로 다시 읽지 않았다.
연대에 대한 기록은 다음의 웹문서 두 개를 참고하였다: 링크1 링크2 (바로 링크를 걸었더니 카페에 가입하라고 나오는군요. 옆 링크를 누르신 후 첫 번째 글을 읽으시면 됩니다)

그런데 과연, 저 열다섯 편의 감상을 다 적을 수 있을까?

by toonism | 2008/01/12 10:53 | 읽을거리 | 트랙백 | 핑백(2)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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